3번 망한 창업자의 N잡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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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 도전기/스타트업

N잡 도전을 시작하며(2)_창업

젠틀 2021. 6. 1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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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을 살고 싶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직원으로 그리고 창업가로서 지낸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내 마지막 퇴사 이유는 정확히 7년 전과 동일했다. 이 N잡 도전기는 내 시간을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망한 창업가의 기록들을 하나씩 남기기 위함이다. 

(물론 수익형 블로그로 온전히 자리 잡았으면 하는 음흉한 바람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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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1 - [N잡 도전기] - N잡 도전을 시작하며(1)

0.  이 멤버와 함께라면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내 시간을 살고 싶다"라는 거창한 핑계로 아무런 대책 없이 퇴사를 한 그 순간

딱 그 순간만 멋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엉덩이만 딱 붙이고 있으면, 다달이 나오던 따뜻한 월급도 사라졌고

사무실에서 죽을상을 하고 있으면, 힘내라고 술을 사주는 동기와 선후배도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막연한 자신감과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은 기대감만 있을 뿐 현실적인 아무런 대책이 존재하지 않았다.

(퇴사 후 세 달 뒤에 내 발이 되어주던 차를 팔게 되었고, 그 뒤로 7년간 뚜벅이 인생이 되었다)

 

퇴사도 대책 없이 했으므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하루라도 빨리 이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삶의 진로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지만, 

퇴사한 사람의 마음이 모두가 그러하듯, 아무런 대책도 없이 우선 태국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빚도 남아있는데,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몇번을 가도 또 가고싶다

 

짧았던 해외여행을 마치고, 그렇게 한 달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울 것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하지만, 점점 밀려드는 카드값과 시간과 비례해서 더욱더 커지는 소비로 인해 이제는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다가왔다. 

 

그즈음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한 동기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으며, 

집이 같은 '인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욱 끈끈했던 동기들과 하릴없이 술을 마시는 시간도 늘어났다.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보고, 가만히 살펴보니

한 명은 공대 출신의 개발자였으며, 한 명은 신문방송을 복수 전공한 마케터였다.

그리고 나는 이것저것 하려고 했던 잡부였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스타트업 인력 구성의 요소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 기획자)를 대부분 충족하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천이라는 지역적 특색과 함께 술로 맺어진 끈끈한 의리는

"아 이 멤버와 같이 어떤 아이템을 창업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라는 강한 확신으로 바뀌었으며,

 

그렇게 우리는 첫 창업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1.  배민이란 게 있다며, 우리도 플랫폼 한번 해보자! 

사람은 모였지만, 우리에겐 아무런 아이템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을 논의할 수 있는 장소 또한 없었고, 솔직히 지금 되돌아보면 진지함도 별로 없었다.

그냥 셋이 함께 있는 게 재밌고, 아이디어를 핑계 삼아 모여서 술 마시고 노는 게 좋은 그런 퇴사 생일뿐이었다. 

 

정기적으로 인천 구월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서 회의하고 아이디어 찾고를 반복했는데

두 달 정도 지나고 보니, 매일 두 잔씩 사 마시면서 자리를 지켜야 했던 그 커피값도 무시무시하게 점 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직장인이였을때나 커피값이 부담이 아니였던것이다..늘 마시니 아주 큰 부담이었다

 

종국에 우리는 빈 종이 커피 컵을 들고 다니며, 회의만 그곳에서 하기도 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인천 예술회관 2번 출구 프랜차이즈 커피집..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중, 그 누군가의 의견으로 (지금도 누가 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창업을 시작하게 만들었으니 이놈이 원수다) 우리는 송도의 작은 3평이 차마 되지 않는 곳에 사무실을 얻었고, 본격적인 창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즈음, 배달의 민족이라는 플랫폼이 한참 커가고 있었으며 카닥(생소할 수 있지만, 아주 유명한 자동차 관련 서비스)이라는 서비스도

커가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도 막연히 플랫폼 비즈니스를 해야겠다는 생각 속에 여러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중 실제 사업화와 가장 근접하게 논의했던 것이 크게

 

1. 중고 자동차 매매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에 달하는 시장이다)

2. 중고 휴대폰 매매 (중고폰을 거래하는 서비스라고 보면 된다)

 

두 개였으며, 우리는 조금 더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로 중고 휴대폰 매매,

정확히는 중고 휴대폰을 사는 매입업체와 개인을 중간에 중개해주는 플랫폼을 시작하게 된다. 

(생소할 수 있지만, 중고차 시장이랑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중고차도 중고차만을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업체가 존재하듯, 중고폰도 휴대폰을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업체가 존재한다)

 

중고 휴대폰 거래 플랫폼으로 가닥을 잡은 데에는 크게 세 가지의 이유가 작용했는데

 

1. 멤버 중 한 명이 일 년에 몇십대의 휴대폰을 실제로 바꾸는 폰테크의 전문가였다

2. 중고 자동차는 너무나 진입한 회사들이 많이 있었다

3. 그 당시에는 휴대폰 거래가 더 큰 진입기회가 많다고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는 중고 자동차 매매 시장으로 진입했어야 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의 극에 달한다는 것은 신뢰성 있는 정보가 없다는 것이고, 더욱이 시장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이제야 느끼지만, 레드오션이냐 블루오션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장이 오션급은 되어야 먹고살만한 게 보인다는 것이다.

중고 휴대폰 거래시장은 오션이라고 하기엔 미흡한 게 너무나 많았으며, 사업을 확장하거나 거기서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는 

너무나 한계가 존재하는 오션이 아닌 리버 정도였다.

 

"중고 휴대폰 거래 플랫폼"

(서비스명은 셀폰이며, 지금 검색해도 그때의 기사와 몇몇의 잔해들이 보인다)

 

지금 생각해도 생소하고 돈이 안 벌릴 거 같은 이 아이템을 보면서

우리는 기회를 발견하고, 시장을 개척하고,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처음부터 안 좋은 지표들만 가득했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러 행운과 기회를 운 좋게 잡으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불운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인 창업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은 보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득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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